사람의 허락이 필요한 왕의 겸손
왕의 겸손
이 세상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허락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하고 계신다.
마가복음 11:1-10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는 뜻 깊은 순간이다. 숨기지 아니하고 이젠 드러내시며 제자들에게 나귀새끼를 가져오라 명하신다. 주인이 물어보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하신다. 만약 이 주인이 허락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시거나 다른새끼를 타고 가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슥9:9)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였다. 예언도 이루신 분을 선생님이라고 할 수 없다.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그 순간 많은 자들이 겉옷을 위에 얹고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라며 우릴 구원하소서 라고 말하고 있다. 모여있는 백성들은 부자와 권력자가 아닌 갈릴리에서 모여든 약자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정치인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께 유익이 되며 세상에 평화를 지향함은 하나님 자녀된자의 도리다.
상상할수록 간절해진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얼마나 간절하고 얼마나 이 세상이 힘들었으면 우릴 구원하소서라고 자신의 옷가지들을 바닥에 펴며 이렇게 간절하게 외칠까 상상이 안간다.
이렇게 낮고 천한 사람들의 순종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은 시작되었다. 왜 모든것을 가진 분이 낙타 주인의 허락을 맏아야 하는지 그 겸손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이렇게 낮고 천한 보잘것 없는 사람의 기도도 필요하여 하나님 구원의 반열에 올라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구지 필요없는 우리의 기도와 순종까지 필요하신 이유는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며 공의로우시며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셔서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지만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것 또한 은혜임을 각자의 그릇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나의 기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둘째가 아직 퇴원을 못하고 또 병실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젠 무조건 깨끗이 씻어 병을 나아 퇴원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중요한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찌됐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테지만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열심에 은혜가운데 올라타 있다면 그걸로 된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고 감격과 기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하시면 서는 지혜롭고 순결한 순종의 사람이 되기 원하시는 아버지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같은 날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감격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예수님 한분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예수님 한분으로만 충만한 삶 순종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