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악인의 형통

생각 공유 2023. 12. 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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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1-22

어제 본문에 이어 오늘 9절과 19절에도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라는 또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잠24:1,9,19)

그리스도인의 딜레마 같은 질문 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 받고 단명하며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비신자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이 살아있지 않음을 증명해 내려 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들에게 어줍짢은 조언으로 그들의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것이다.

어제 유튜브 영상을 보다 전도하시는 흑인분을 보는데 옆에 서 계신 할머니께서 화가 잔득난 얼굴로 강제 수용되어 성폭행 당하며 학대 받을때 예수님은 어디있었느냐는 질문에 전도자는 그들의 부모나 그들의 조상이 죄를 범했고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주었기에 고통받은거다. 하나님은 고통을 주신 분이 아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만나면 고통가운데서 자유할 수 있다라는 영상 내용에 대한 누리꾼들의 상반된 댓글들을 보았다.

대부분은 그 전도자의 입장이며 그들도 그에 대해 더욱 명확하고 장황한 사실 기반에 근거하여 간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고통받고 살았고 내 주변 사람들도 아직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럼 그들은 저주받은 사단의 자녀란 말인가? 이렇게 쉽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데 그끝은 축복이더라도 지금 살 얼음판을 걷고 있는 믿음의 지체들에겐 더 가혹한 악담이며 비신자들에겐 더 악한 마음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다.

우리 아버지는 딱 오늘 13일 새벽 내가 12살에 졸음운전으로 돌아가셨다. 가족을 위해 3, 4 시간 잠을 자며 새벽기도를 쉬지 않으시고 교회일엔 최선을 다하며 살다 결국 트럭운전하시고 집에 오시는 새벽 길에 고속도로에 세워둔 차와 정면충돌하시고는 즉사하셨다.

그리고 참 열심히 살아 그리스도인다운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성장하는중 많이 방황 했고 23살이 되어서야 주님을 만나고 마흔살이 되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새벽에 나가 우시는 방법이 전부라는걸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강한자가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다.

오늘 본문 10절 환난날에 낙담하면 내 미약함을 드러낼 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를 주님께 드러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힘을 주시고 평강을 허락하시기에 그렇게 새벽마다 기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 한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시절 리비아에서 일하시며 가족들에대한 사랑을 테이프로 일기장으로 집에보내주셨다. 그 안에는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달리다굼을 부르시며 그렇게 아버지형제들이 그리스도인 되기를 눈물로 기도하셨다.

그러나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친척들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젊은 날 애들 둘을 놓고 떠났다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을 어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감사한건 지금은 한두가정씩 변화되더니 지금은 한 가정빼고 전부 크리스천이 되었고 형제분들은 소천하셨다.

내가 이해하고 아는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안아주고 나도 모르겠다며 그저 바라보고 그 분들 앞에서 예수님처럼 죽어주는 것 그저 울어주는것 안아주며 위로해 주는것 우리가 할 일은 없다. 하나님께 가져나와 기도하고 그분들이 하나님앞에 스스로 나아가기만을 기도하는것 그게 전부다.

하나님 제 방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것을 억지로 풀다 어리석고 미련한 어설픈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상처주지 않게 하시고 저 또한 풀다 안풀려 스스로 화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께 모든것을 드리는 지혜와 겸손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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