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약한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은 거라사라는 해변가에서 흉측한 귀신들린자를 만나 귀신 축출하신 과정에서 사탄이 스스로 이천마리 돼지떼에게 옮겨가기를 원하니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사 돼지 떼가 갈릴리 바다로 뛰어들어 몰살되어 거라사 주민들이 떠나 줄것을 요청하여 배에 오르실때 귀신들린자가 함께하길 원하였지만 거절하시니 그가 데가볼리에 자신에게 행한 크신 일을 전파하는 장면이다.
오늘말씀을 통해 돼지 농장 주인은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했다. 그들의 재산이 바닷속으로 빠져 몰살되는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두렵기도 하고 얼마나 억울하기도 했을까?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귀신축출 하시면서 왜 억울한 일을 만드셨을까? 라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서라면 많은 자들이 희생양 되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면 되는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러셨을까? 기도중에 거라사라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이 들어 찾아보니 [ 거라사 영어로 제라시라 불리우는 이 지역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당대에 로마 제국 전체에서 아주 부유한 도시의 하나로 손꼽힌 도시였다. ]
부유한 동네였다. 그렇다면 왜 이 흉측한 귀신들린자가 출몰하였을까? 그는 상상만 해도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이 갔다. 무덤 사이에 살며 아무도 그를 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여러 번 고랑과 시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으며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고 3,4 절에 기록하고 있다.
5절엔 밤낮 무덤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5 : 1~20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마가복음에 4번의 귀신축출 사건을 보면 다 보호함을 받거나 부유한 가정이였을 가능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나오는 거라사의 광인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부유한 동네에 왜 이러한 자가 돌봄을 받지 않고 저러고있을까? 하나님은 이러한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더욱 드러나길 원하셨으며 다른 축출 사역보다도 오늘 사건을 기록함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7년전 영등포에서 2년정도 노숙인 사역을 한적이 있었다. 처음에 찬양 사역하기에 앞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처음엔 함께 밥먹는것 조차도 힘들었다. 그런데 함께 하면 할수록 그들의 손톱과 치아 냄새에 민감함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들과 함께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농담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들의 겉모습보다 내 마음속이 얼마나 더럽고 냄새나는지 알게 되었다. 이후 웃사가 법궤가 땅에 떨어지는걸 막기위해 손을 대자 하나님께서 죽이신 사건이 이해가 되었다.
내 마음은 날마다 바뀌고 내 안에 생각은 더럽기 짝이 없어 그들을 바라보며 찬양할 때 눈빛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았는지 그들중에 어떤분이 제게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하는 모습속에 내가 얼마나 같잖은지 알게 되었다. 내 생각과 내 자존심과 내 안에 거룩이라고 착각하는 가식의 모습이 얼마나 더러운지 하나님께 실제로 드리는 마음과 사람들에게 비춰진 모습이 얼마나 다른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지 하나님은 깨닫게 해주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약한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또 한번 깨닫게 하셨다.
고전1: 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돼지 농장 주인이 억울하겠다고만 생각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인본주의적인 생각인지 거룩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적인 열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차이가 없는 다 같은 죄인임을 또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내 모습이 더럽고 추악하고 냄새나더라도 예수의 보혈로 씻고 예수의 옷을 입고 오늘도 한발작 한발작 나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