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늙어 이제 왕위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교만하여 왕이 될것을 짐작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며 자기를 위해 왕권을 준비 합니다.
아도니야가 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당연한 순리라는것을 알 수있습니다.
열왕기상 1:1-10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넷째 아들이지만 형들은 전부 죽었고 특별히 문제 없이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하던 넷째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높아졌다는게 문제 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아닌 자신의 때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뜻을 먼저 구하지 않았거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이되어 영광을 독차지 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순간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걸어갔던 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항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도전을 두려워 하고 스스로 만든 자신의 정죄라는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더욱 그렇게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 몸은 영혼육이 스스로 100%채우려고 노력 합니다. 기본적으로 죄의 껍데기를 입고 있기에 영에 민감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육이 살고 육의 생각을 죽으면 영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과 육의 생각이 만나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지옥에 갈것 같은 생각은 육에서 나옵니다. 육이 살면 영으로 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더 큰 문제를 지적합니다.
죄인의모습으로 살아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 자신의 신앙이 좀 좋아지는 것 같은 상태 즉 위를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상태 둘 다 영적으로 무뎌진 상태는 동일합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흠이 없게 살아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육의 상태 거기엔 아무런 거룩도 하나님의 임재도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사모함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성찰이 자신의 영혼을 죽이고 잘한다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긍휼하심을 구하고 나아가기 라도 하는데 잘 한다고 착각하는 교만은 답도 없습니다.
오늘 아도니야 처럼 평생 자신의 발톱을 숨기고 교만을 숨기고 착한아이 처럼 순종하는 자녀처럼 살다 인생의 변화나 위기의 기회가 찾아올때 숨겨왔던 자신의 교만을 나타냅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던것은 그런 환경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욕구가 본능이 드러납니다. 그동안 숨겨왔지만 교만이 드러나는 자들 이런 자들은 차라리 죄인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더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의 진심을 압니다. 진정으로 변화되고 싶은건지 정말 간절한지 정말 죄를 짓고 싶지 않은건지 그냥 자기가 불편해서 회개하려하는건지 압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선물로 성령세례를 주십니다.
스스로 죄인된 모습을 보기 때문에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신분을 의심 하듯이 자칭 의인이라는 모습으로 자기 신분을 착각하는것 오늘 아도니야의 헛된 야망처럼 더 최악의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스스로 높아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평소에 착하고 올바른 사람인줄 알았는데 공부좀 하더니 사회적 지휘가 주어지더니 어떤 성과로 타이틀이 주어지는 순간이 오면 오늘날의 아도니야처럼 자기가 뭐 좀 되는줄 알고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분석하고 하나님이 옷을 입혀주시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뺏어 입으려고 하는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죄인된 모습도 의인된 모습도 고난도 통곡도 고통도 경건 생활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설수 없고 사실 비교조차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칭의를 입은 자들일뿐입니다.
하나님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이 아니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제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것을 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지금 처한 이 상황을 극복하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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